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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산만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읽어도 집중이 안되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시간이 있으니까 , 지금은 시간이 내게주는 호사를 누려야 되지 않나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읽었다.
철학이야기인가, 종교이야기인가.
종교도 어느 한 종교에 국한 되지 않고 기독교,기독교중에서는 특히 신비주의, 불교, 도교,힌두교, 내용도 왔다 갔다하여 중심을 잡고 읽기가 불편하였다.
또 쪽 밑의 각주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용되었는지 , 그 내용도 한번 훝어나가려니 좀처럼 즐거워야할 독서가 즐겁지 않음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끝은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간에 알람까지 눌러놓고 읽어가는 순간은 집중하려고 했다.
읽어나가다 보니 차츰 처음 난해한 기분에서 조금은 감이 잡히는 어떤 지점이 있다.
100쪽 지나가니 책의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든 종교, 또는 현자들의 가르침속에 무엇이 있는가의 문제인데
너무 영적이고 , 또 이르지 못할 도덕의 높은 단계, 신과 나와의 궁극적인 깨달음등 지금 현실의 나와는 상관없는,
아니 나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이순간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 아닐까
200쪽쯤 읽었을때 저자가 누구인지, 어느 시대를 살았던 사람인지, 들어가기를 다시 보고 다음을 읽었다.
조금도 읽기가 수월해지지 않았다.
이 구절 하나를 살펴보자
≪신이 인간의 형상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원리는 대부분이 영원의 철학의 주요한 역사적 설명에서 힌두사상, 대승불교, 그리스도교, 예언자들을 영원한 로고스와 동등하게 취급하는 수피의 이슬람에서도 발견된다. ≫
많은 인용구, 그들의 말, 명언들을 나열하여 하나의 원하고자 하는 문구가 되었다.
"신은 인간의 형상이 될 수 있다."
저자는 박학다식하여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지식의 향연을 펼치는듯하다.
그래서 내용이 너무 형이상학적이다.
읽어가기가 참 어렵다.
너무 술술 읽히는 책도 약간의 거부감이 있지만 난해한 책은 꼭 도전하는 기분이 들어 달갑지 않다.
이 책은 내게 그런 느낌이다.
도전하고 싶지 않은데 도전을 해야 될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내용
알고 싶지 않은데 시작했으니 앎으로 들어가야 하는 책이다.
≪평범하고 선량하지만 정신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세상은 대체로 단조로워서 (너무 단조로워 그 단조로움을 의식하지 않도록 온갖 종류의 인위적인 오락을 즐기는데 한눈을 팔아야한다. )
때로는 짧지만 강력하게 즐거우며 때때로 혹은 자주 불쾌하고 괴롭기까지 하다.
자신의 영혼뿐만 아니라 세상속에서 신을 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적합하게 만듦으로서 마땅히 세상을 누릴만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아주 다른 측면을 띤다. ≫
맞는 말이다, 온갖종류의 인위적인 오락가운데 하나는 하고 있을테니 그것이 메스컴이건 독서이든,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무언가는 한다. 아니 하고 있다. 그래서 씁쓸하다.
오늘날 지식을 충분히 접할 수는 있는데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할때가 많고 정보의 홍수, 폰만 있으면 검색되어 접하는데
나의 지식은 아니다.
나는 평범하고 선량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깨달은 바가 없는 사람이다? .
마치 독자인 내가 그런사람이 된것같다.
이 구절 하나로 나는 씁쓸하다.
≪언어가 모호하면 사고가 혼란스러워진다. 이런 사랑의 문제에 있어 사고의 혼란은 놀랍게도 신을 믿지 않는 분열된 인간본성 , 양쪽 세계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결심한 인간본성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 종사한다.
신에게 봉사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돈 , 술, 여자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
≪고행은 하지만 여전히 자만심에 차있고 자기중심적인 금욕주의자와 고행을 하지 않는 쾌락주의자 ≫
이제 약간의 평범함을 벗어나고자 신에게로 가려고 노력하는 고행자도 비판한다.
차라리 고행을 하지 않아도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된다.
중간은 없다. 아니 중간인 평범도 이미 무뇌아 취급을 한것 같다.
단순해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다.
이제 영원의 철학의 주제는 영원한 영적 실재의 성질로 돌아온다.
진리
진리를 깨달은 자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이란 한번정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많은 경우에 치명적이라고 한다.
진리와 언어 , 시적언어, 내용은 다시 난해하다. 이해가 되는듯 하지만 깊은 이해는 아니다
수박겉햟기 면 이해하지 못한거다.
이제 지식은 자신의 원하는 만큼 실재에 대해 알수 있다고 하며 가만히 있는 자들을 게으름과 무지에 있는것처럼 지식을 말하고 있다
종교와 기질 에서는 심리학을 논하고 있다
쉘던의 신체적 세가지 요소 내배엽, 중배엽, 외배엽을 이야기할때는 융의 외향 내향을 은근 부적절한 분류라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외배엽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앎의 길을 가는게 쉬우며 모든 수준의 문화에서 일신교도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중배엽형의 반란은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도의 물질문명은 대규모의 다신론실천과 관련이 있다.
역시 어렵다.
나는 쉘던보다는 칼융이 더 익숙하다.
힌두교인들, 불교인들간에는 피비린내나는 박해 , 종교적인 전쟁을 하지는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
현재에도그리수도교, 이슬람등은 종교적인 이유로 전쟁을 하고 있지만 힌두교는 그러지 않았나보다
익숙한 종교가 아니고 나의 삶과는 먼 종교, 남의 이야기 인것 같아 와닿지는 않다.
침묵을 말할때는
입의 침묵, 마음의 침묵, 의지의 침묵 세단계를 나누고 의지안에서 갈망과 혐오의 목소리를 잠재우라고 한다.
영적훈련에서는
고정된 형상의 신을 찾는자는 그 형상을 잡고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신을 놓치고 있다.
묵상, 행위, 사회적 유용성 에서
≪인간삶의 궁극은 묵상, 혹은 신을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자각하는것,
행위는 그런 목적의 수단이라는 것,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묵상을 가능하게 하는 한에서 선하다는것 ≫
이제 내용이 끝을 향한다.
≪철학자들의 시대에도 다른 시대와 마찬가지로 열렬한 신비가들이 존재하는데 신들은 이세상에서 그들을 빼앗아가지 않는다. 그들이 세상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해 죽음으로서 영언한 영감이 가능했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아 근본영의 섬세한 접촉에 무감각한 사람들에게 신성한 은총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다≫로 마무리 한다.
다 읽어도 어려웠다.
500쪽의 내용이 감만 올듯하다 마무리 된 느낌이었다.
옮긴이의 글을 읽으니 약간은 정리가 된 듯 하기는 해도 내것으로 소화가 힘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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