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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는 건 나야
조야 피르자드/로만출판사/김현수옮김
이란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에 읽었던 샤나메,이란코너에 있었던 제목이 시선을 끌던 '불을 끄는 건 나야'라는 이란의 여성작가의 소설
왜 소설에 여성작가라는 이름이 붙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2024년 현재 이란의 여성의 현실을 볼때 이란에서 만큼은 여성소설이 주는 의미도 있겠다 싶다.
더 놀라운건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시점보다 훨씬 오래전에 쓰였던 소설인데 소설이 쓰였던 시점과 지금 현재의 여성의 인권이 그닥 나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고, 소설의 내용이 여성인권이니 하는 그런 거창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이다 못해 너무나 평온한 하루의 시간들을 너무나 담담하게 쓰여졌다는 점에서 읽어나가는 것은 전혀 부담이 없다.
그러나 계속 읽어가다보면 내용의 전개와는 다른 의미로 짜증은 난다. 도데체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소설은 쉽지만 읽어야 할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참고 읽어가다 싶을때 희미하게나마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인지 조금 감은 잡을 수 있다.
소설이 쓰여진 시점은 2002년, 20년전의 내용이 2021년에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었다는 점,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작가의 소설도 아니고 이란에 관심이 있어야만 손을 뻗을 수 있어서 강렬한 책 제목만큼이나 시선을 끌었지만 내게는 그저 그런 소설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기억하고 싶은 책속의 내용정리
- 불을 끄는 건 나야
- 나는 남편 말을 흘려들으려고 애썼다, 아르투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그건 이미 오래전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애들이 넘어지거나 병이나도 마찬가지였다.
- 아르투시가 문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서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비극은 매일 일어나 50년 전에만 비극이 일어났던 게 아니라 바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먼 곳도 아니고 바로 여기 이 초록이 무성하고, 안전하고 세련되고, 현대적인 아바단의 중심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도 비극은 일어나고 있다고
-사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밀리에게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너를 잊을 수 없을거야, 나는 이세상 끝까지라도 너를 따라가서 독재적인 너희 할머니와 무자비한 아버지로부터 구해 낼 거야, 나도 바보 같은 동생들과 할 줄 아는 거라곤 남 비판하고, 밥하고, 꽃이나 심고 불평하는 것밖에 모르는 엄마와, 매일 체스 두고 신문 읽는 것 말곤 하는 게 없는 아빠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이세상 모든 부모와 할머니들을 타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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